<노동자에게 일방적인 책임 전가하는 실업급여 개편방향 철회하라>
정부와 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고 수급 요건을 강화하는 이른바 ‘실업급여 개편안’을 추진 중이다. 실업급여 수급자와 지급액이 늘어 고용보험 재정이 점점 위태롭다는 이유 때문이란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료를 낸 노동자가 실직 후 재취업 활동을 하는 동안 생계안정과 재취업을 돕기 위해 지급하는 급여인데 단순히 보험재정이 위태롭다는 이유만으로 지급액을 줄이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정부는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가 늘고, 수급자들이 수급기간 내에 재취업을 하는 비율이 줄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높은 실업급여 액수가 구직자의 취업 의욕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편승해 실직자·구직자를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없이 들린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를 ‘달콤한 보너스’라는 의미로 ‘시럽급여’에 비유했다. 실업급여 당사자인 노동자는 배제된 채 정부, 여당, 경영계, 친기업 전문가만 불러놓고 개최한 공청회에선 “실업급여로 해외여행 간다”, “명품 선글라스를 즐긴다” 등의 발언까지 나왔다.
통계상 반복 수급자가 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가 통계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재정의 위태로움'이 아니라 '반복수급의 원인과 배경'이다.
그만큼 ‘반복적으로 계속 실직'하며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는, 단기 계약직이나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 일자리가 증가했고,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정부·여당은 물론 수많은 언론들도 반복 수급이 늘어난 이유에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
정부는 계약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기업의 고용 관행과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가 부족한 작금의 현실은 뒷전인 채 실업급여 ‘반복 수급’, ‘취업 의욕 저하’를 강조하며 실업급여를 깎아 취업률을 높이겠다는 가학적 발상만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말하지 않는 것이 또 있다.
실업급여는 실직 전 3개월 평균임금의 60%인데, 이 금액이 최저임금보다 낮으면 최저임금의 80%를 지급한다. 즉, 월 184만 7,040원(이직 전 주40시간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30일분 기준)이 ‘하한선’이다.
정부는 이 금액이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소득인 179만 9800원(세율 10.3%의 경우)보다 높다며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며 한국의 실업급여가 높은 편이라고 호도한다.
그러나 이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다. 단시간 노동 등 다양한 저임금 노동 형태를 고려하면 실제 역전현상이 발생하는 사례는 극히 적다는 게 고용보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한국의 실업급여 수급기간은 2년까지 지급되는 독일 등 다른 나라와 비해 4~9개월로 짧다. 그 결과 실업 후 1년도 안 되어 직전 임금대비 실업급여 비율이 OECD 평균에 비해 절반 수준인 24%로 떨어진 것이 현실인데 정부는 이런 사실은 외면한다.
한편, “실업급여로 해외여행을 가고 샤넬을 산다”고 지적당한 청년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30세 미만 청년 중 첫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인 경우가 47.1%에 달했다. 2020년 41.9%보다 5.2%p 늘어난 수치다. 심각한 취업난으로 인해 불안정한 일자리에 내몰린 청년들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 일자리부터 불안정한 일자리에 내몰린 청년들은 ‘반복 실직’을 원하는 게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에 취직해 ‘실직’의 늪에 빠지지 않고 싶은 것이 그들의 마음이다.
청년층만 아니라 고령층도 마찬가지다. 소위 ‘100세 시대’에 주된 일터에서 퇴직한 고령층은 생계유지를 위해 계속 노동한다. 그들의 일자리 또한 불안정하고 열악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5세 이상 취업인구 중 37.1%는 비(非)임금 근로자, 27.8%는 임시·일용직으로 나타났다.
청년, 고령,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의 73.1%(119만 명)를 차지하는 이유, 그들 대부분이 불안정 노동, 저임금 노동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급여 하한액을 적용받고 있다.
실업급여를 받으러 웃으며 고용센터를 방문하는 것이 잘못인가?
아니, 오히려 실업급여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으니 배우자 사망의 고통보다 크다는 실업을 당하고도 웃을 수 있는 '안심급여'! 그것이 바로 실업급여의 진면목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을 상대로 실업급여마저 아까워서 깎겠다고 한다.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폐지하거나 60% 정도로 하향 조정하고, 실업급여 수급 요건인 직장 재직기간도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초단기, 계약직, 일용직을 고용하는 기업과 정부의 책임은 없이 오로지 취약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실업급여 개편 방향을 당장 철회하라!
원인도 모르고,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당장의 위기 모면을 위한 탁상행정은 그만두고 관련 업무 종사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국가공무원노동조합과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할 것을 요구한다! 기금 고갈의 문제, 반복수급의 해법, 고용구조의 개편 등 현안문제 해소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적기이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은 사회적 약자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실업급여 삭감 개악 저지, 불안정 노동 중단,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